[교육/세미나 후기][교육강좌] 시네피스-영화, 여성의 전쟁경험을 묻다 (10/30)

관리자

전쟁의 기억을 현재화하기: 누적되는 ‘이후’의 기억

 

신소현


10월 한 달간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된 이번 시네피스 특강은 다큐멘터리 영화를 통해 전쟁 경험에 대한 증언을 듣는다는 것의 의미를 새삼 묻게 했다. 마지막 시간이었던 지난 월요일에는 이길보라 감독의 <기억의 전쟁>(2020)을 보고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던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 운동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누었다.

 영화는 2018년 4월에 있었던 '베트남전쟁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에서부터 시작한다. 피고는 대한민국이다. 영화는 퐁니 퐁넛 마을 학살 사건의 생존자로서 시민평화법정의 원고로 선 응우옌 티 탄을 시작으로, 가족들의 영정 사진 앞에 헌향하는 응우옌 럽, 몇 차례나 장소를 옮기며 자신이 그곳에서 보았던 것을 온몸으로 증언하는 딘 껌을 소개해준다.

“내가 봤어. 분명 한국군이었어” 수어로 말하는 딘 껌의 말 중 자막으로 옮겨지는 첫 번째 말은 1968년 딘 껌이 겨우 여섯 살 아이였을 때 목격한 퐁닛 퐁넛 마을에서 있었던 한국군에 의한 학살에 대한 증언이다. 이어서 딘 껌은 한국군이 어린 베트남 여성들을 “샀고” 임신한 여성들을 두고 가버리곤 했음을 증언한다. 여덟 살 나이에 가족을 모두 잃은 응우옌 티 탄은 한국군을 증오한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한국군은 미국의 용병일 뿐이기 때문에 원망하지 않는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응우옌 티 탄은 어린 나이에 엄마와 형제들을 잃고 혈혈단신으로 살아와야 했다. “그들이 미국의 용병이든 아니든 그게 중요치 않아. 그들이 학살한 우리 가족은 모두 여성과 어린이였단 말이야.” 응우옌 럽은 학살 당시에 마을에 있지 않았지만 한국군에 의한 학살로 가족을 다섯 명 잃고, 전쟁 이후 한국군이 주둔했던 땅에서 농사를 짓다가 한국군이 심어놓은 지뢰가 터져 시력을 잃게 된다. 응우옌 럽은 익숙한 동작으로 가족들을 위한 제사를 지내고, 학살이 이후 유족들이 시신을 모아 만든 무덤에 올린 향불을 본 한국군이 어떻게 무덤을 다시 파내어 희생된 이들을 추모할 수도 없게 했는지를 증언한다.

 영화에서 주요한 증언자로 등장하는 세 인물(응우옌 티 탄, 응우옌 럽, 딘 껌)은 학살의 현장에서 살아나오거나, 직접 학살의 현장을 목격하거나, 전쟁으로 인한 여파를 몸으로 겪어낸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생존자들이다. 이들의 증언은 ‘전쟁’이 전시상황의 전장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새삼 상기시켜 준다. 또한 직접 겪었거나 목격한, 분명하게 일어났던 학살의 진상규명을 위해 계속해서 투쟁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이들에게 전쟁은 끝난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삶에서도 계속되는 것이다. ‘기억의 전쟁’이라는 영화의 제목은 이미 끝난 것으로 상정되는 전쟁의 여파가 생존자의 삶에 가져오는 이러한 지속적인 영향과 계속해서 누적되는 전쟁‘이후’의 기억들에 대해서도 말한다.

한편으로 이 영화가 보여주는 전쟁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는 또 다른 ‘기억의 전쟁’은 지금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월남전 참전을 미국과의 동맹, ‘전쟁 특수’로 이야기하는 한국 사회의 공식적 기억과 ‘양민 학살’을 부정하는 월남전 참전 군인들의 주장에는 베트남전쟁 참전 시기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에 대한 기억이 소거되어 있다. ‘한국의 월남전 전몰장병 합동 위령제’에 군복을 차려입고 참석한 ‘참전 용사’들은 베트남참전이 한국의 경제발전에 어떻게 이바지했는지를 강조하고 ‘백 명의 베트콩을 놓치는 한이 있어도 한 명의 양민을 보호하라’는 당시의 작전 명령 구호를 통해 베트남전에 ‘양민 학살’은 없었음을 강변한다. 이들이 반복적으로 힘주어 말하는 이러한 이야기들 속에는 몸을 바쳐 나라에 이바지한 공로에 대한 인정과 고엽제 등으로 인한 피해 보상 요구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베트남전쟁에서의 민간인 학살을 부정하고 사과하기를 거부하는, 가해자로서 참전군인들의 반성 없는 언설은 분명 또 다른 가해 행위이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후 귀국해서 노년에 이른 지금까지도 베트남전쟁의 ‘참전 용사’로서의 경험을 인정받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도 전쟁 ‘이후’의 전쟁을 계속해서 겪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영화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장면 중 하나는 한국군에 의해 희생된 가족들을 위한 제사상을 차리고 헌향하고 헌화하는 장면들이다.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면 내 삶은 아버지, 어머니, 형제들의 제사를 챙기기 위한 거였던 것 같아.” 응우옌 티 탄의 이 말은 생존자로서 가족들을 추모하기 위한 제의가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전쟁 이후의 삶을 형성했음을 말해준다. 베트남전쟁에서의 한국군 민간인 학살의 생존자이며 가족 중 유일한 생존자이기도 한 응우옌 티 탄은 학살에 희생된 가족에 대한 기억으로 인해서 학살의 진상규명을 위한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민간인 학살을 인정하도록 하고 더 나아가 사과하도록 하겠다는 이러한 투쟁의 여정은 계속되는 제사 의례와 마찬가지로 전쟁 ‘이후’의 기억으로 누적된다.

이길보라 감독이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자면, “<기억의 전쟁>은 베트남전쟁의 진실을 파헤치는 영화가 아니다.” 이어서 감독은 말한다. “민간인 학살에 관해 내가 만들 수 있는 최선의 접근은 이번 영화 속의 여성, 장애인과 같이 공적언어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의 언어로 전쟁을 기록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최대한 전쟁의 참혹한 이미지는 다루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사실과 정보 그 자체보다는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하는 태도의 문제에 집중했다.”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94899)

 베트남 전쟁 시기의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에 대해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영화를 통해 생존자들의 증언을 전해 듣게 된 사람으로서, 우리는 이러한 증언을 어떻게 듣고 또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이지만 이 영화가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공적 언어’가 아니라는 이유로 더욱 들려지기가 쉽지 않은 ‘공적 기억’ 이외의 기억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전쟁은 전쟁 ‘이후’를 포함한다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전쟁을 기억하는 것은 전쟁의 기억을 과거에 있었던 일로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전쟁 ‘이후’에 누적된 시간과 기억, 현재를 함께 기억하는 일일 것이다.

 

[같이 보면 좋을 자료]

 

사후세대의 포스트 메모리와 관련된 최근의 한국 영화들

: <김군>(강상우, 2018), <나의 노래: 메아리>(정일건, 2018), <리틀보이: 12725>(김지곤, 2018), <기억의 전쟁>(이길보라, 2018)

 

아카이브평화기록 https://peacememo.org/

영화 <당신의 해방>(박혜진, 2023)

도서 『월남으로 간 동창생들』(석미화, 세종피엔피, 2023)

박혜진(노랭), “다큐멘터리 <당신의 해방>: '2023년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함께하며”, https://peacememo.org/30/?idx=15873256&bmode=view

 

심아정, “가닿지 못한, 그러나 확보해야 할 전쟁 경험의 말‘들’: 베트남민간인학살 국가배상소송 1심 승소 이후 ‘민(民)’의 확장을 제안하며”,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웹진: 결 KYEO》, Lhttps://kyeol.kr/ko/node/542

 

이슬기, “착취의 장소에 대한 감각 in 베트남”, 《더슬래시》, https://theslash.online/boardPost/138740/3

 

한베평화재단 http://www.kovietpeace.org/

교재 『평화꾸러미, 전쟁기념관 가다』

 

영화 <미친 시간>(이마리오, 2003)

소설 『전쟁의 슬픔』(바오 닌, 아시아, 2012)

 

도서 『전쟁의 기억 기억의 전쟁』(김현아, 책갈피, 2002)

도서 『전쟁과 여성: 여성의 눈으로 전쟁을 말하다』(김현아, 슬로비, 2018)

도서 『기억의 전쟁』(이길보라·곽소진·서새롬·조소나, 북하우스,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