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동네 빵집에 딸이 태어났다.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고 집안이 가난해진 탓에 그는 열일곱의 나이로 기생이 되었다. 성병으로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유곽에 창기로 팔려갔다. 빚을 빨리 갚기 위해 대만으로 건너가 군 '위안부' 생활을 했다. 집안의 빚은 계속 늘어났고, 전쟁터를 옮겨다니는 와중에 유곽 주인의 세 번째 부인이 되어 전쟁이 끝나고서야 귀국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 시로타 스즈코는 지금까지 공개적으로 증언한 유일한 일본인 '위안부'다. 2000년 도쿄법정이 일본인 '위안부'의 피해를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인 '위안부'의 존재는 일본 사회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도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다. 이는 '강제동원 vs. 자발적 성매매'라는 프레임이 지난 30년간 일본군 '위안부' 논의를 지배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강제 동원된 식민지 '처녀들'과 자발적으로 돈을 벌러 간 일본인 성매매 여성들이라는 구도도 포함되었다. 공창(公娼)에서 일하던 일본인 여성들이 목돈을 받고 자원한 것과 달리 대규모로 동원된 조선인 여성들은 나이 어린 순결한 처녀가 다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대립 구도에서 일본인 '위안부'는 전쟁의 피해자가 될 수 없었다. 국가와 사회는 "나라에 도움이 된다" "야스쿠니에 모셔진다"며 여성들의 애국심에 호소했지만, 전후 보상 문제에서 일본인 '위안부'는 제외되었다. …(이하 생략)…
출처: 허윤. "'강제동원 vs. 자발적 성매매'의 프레임을 넘어서," 한국일보(2021.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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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동네 빵집에 딸이 태어났다.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고 집안이 가난해진 탓에 그는 열일곱의 나이로 기생이 되었다. 성병으로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유곽에 창기로 팔려갔다. 빚을 빨리 갚기 위해 대만으로 건너가 군 '위안부' 생활을 했다. 집안의 빚은 계속 늘어났고, 전쟁터를 옮겨다니는 와중에 유곽 주인의 세 번째 부인이 되어 전쟁이 끝나고서야 귀국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 시로타 스즈코는 지금까지 공개적으로 증언한 유일한 일본인 '위안부'다. 2000년 도쿄법정이 일본인 '위안부'의 피해를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인 '위안부'의 존재는 일본 사회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도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다. 이는 '강제동원 vs. 자발적 성매매'라는 프레임이 지난 30년간 일본군 '위안부' 논의를 지배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강제 동원된 식민지 '처녀들'과 자발적으로 돈을 벌러 간 일본인 성매매 여성들이라는 구도도 포함되었다. 공창(公娼)에서 일하던 일본인 여성들이 목돈을 받고 자원한 것과 달리 대규모로 동원된 조선인 여성들은 나이 어린 순결한 처녀가 다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대립 구도에서 일본인 '위안부'는 전쟁의 피해자가 될 수 없었다. 국가와 사회는 "나라에 도움이 된다" "야스쿠니에 모셔진다"며 여성들의 애국심에 호소했지만, 전후 보상 문제에서 일본인 '위안부'는 제외되었다. …(이하 생략)…
출처: 허윤. "'강제동원 vs. 자발적 성매매'의 프레임을 넘어서," 한국일보(2021.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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