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시화되지 않았던 여성들의 자취와 기억을 공적 담론의 장으로 건져 올리는 여성사 쓰기, <페미니스트 연구자들이 발굴한 여성의 역사> 연재는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 지원을 받아 진행됩니다. [편집자 주]
“돌아온” 낯선 동포들, 재한재일(在韓在日) 가시화하기
사람들이 보통 초면에 자신의 출생지나 자라온 환경까지 말하지 않는 것처럼, 나도 자기소개를 할 때 일본에서 나고 자랐다는 이야기를 안 하는 경우가 많다. 회의나 학회 등 공적인 자리에서는 굳이 그럴 이유도 필요도 없다. 학교 강의를 할 때도 그렇다. 부산이나 제주에서 태어난 사람이 있는 것처럼 청진이나 연변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지금 한국에는 많지 않는가. 나는 일본의 지방 소도시에서 나고 자랐다. 그게 뭐 어때서?
이렇게 말할 수 있으면 참 좋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나라에서 ‘한국인’의 기준은 그 정도로 열려있지 않다. 제도의 면에서도, 인식의 면에서도 그렇다. 17년째 한국에서 살면서 겪은 여러 문제들을 기록해놨어야 했다는 후회가 많이 든다. 지금이라도 늦지는 않았다는 생각에 요즘에는 단편적인 기억들을 조금씩 적어두려고 애쓰고 있다.
지금은 거의 없어졌지만 한국에 온 초기에는 불쾌한 일들이 제법 많았다. 어떤 학술회의에 토론자로 참여했는데, 인사하고 대화하면서도 “실례지만… 국적이…”라고 물어본다. 옆에 있던 나를 알던 선생님이 왜 몰랐냐는 듯 “일본분이야~” 참 쉽게도 말한다. 이 대화는 모든 것이 엇나갔다. 한국어가 서투르다고 해서 국적을 물어보는 것 자체가 맞지 않다. 그나마 정답이라면 “고향이 어디세요?”가 되겠지만, 그런 것을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다. 그리고 일본에서 왔다고 “일본분”이라 부르는 것도 참으로 일방적인 호명이다. …(이하 생략)…
출처: 조경희. "한국으로 돌아온 자이니치, ‘한국인’의 기준을 묻다," 일다(2020.9.29.) https://www.ildaro.com/8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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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시화되지 않았던 여성들의 자취와 기억을 공적 담론의 장으로 건져 올리는 여성사 쓰기, <페미니스트 연구자들이 발굴한 여성의 역사> 연재는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 지원을 받아 진행됩니다. [편집자 주]
“돌아온” 낯선 동포들, 재한재일(在韓在日) 가시화하기
사람들이 보통 초면에 자신의 출생지나 자라온 환경까지 말하지 않는 것처럼, 나도 자기소개를 할 때 일본에서 나고 자랐다는 이야기를 안 하는 경우가 많다. 회의나 학회 등 공적인 자리에서는 굳이 그럴 이유도 필요도 없다. 학교 강의를 할 때도 그렇다. 부산이나 제주에서 태어난 사람이 있는 것처럼 청진이나 연변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지금 한국에는 많지 않는가. 나는 일본의 지방 소도시에서 나고 자랐다. 그게 뭐 어때서?
이렇게 말할 수 있으면 참 좋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나라에서 ‘한국인’의 기준은 그 정도로 열려있지 않다. 제도의 면에서도, 인식의 면에서도 그렇다. 17년째 한국에서 살면서 겪은 여러 문제들을 기록해놨어야 했다는 후회가 많이 든다. 지금이라도 늦지는 않았다는 생각에 요즘에는 단편적인 기억들을 조금씩 적어두려고 애쓰고 있다.
지금은 거의 없어졌지만 한국에 온 초기에는 불쾌한 일들이 제법 많았다. 어떤 학술회의에 토론자로 참여했는데, 인사하고 대화하면서도 “실례지만… 국적이…”라고 물어본다. 옆에 있던 나를 알던 선생님이 왜 몰랐냐는 듯 “일본분이야~” 참 쉽게도 말한다. 이 대화는 모든 것이 엇나갔다. 한국어가 서투르다고 해서 국적을 물어보는 것 자체가 맞지 않다. 그나마 정답이라면 “고향이 어디세요?”가 되겠지만, 그런 것을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다. 그리고 일본에서 왔다고 “일본분”이라 부르는 것도 참으로 일방적인 호명이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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