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 (동물해방공동체 직접행동DxE 활동가)
읽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책의 결론까지 가지 않은 것 같지만, 대부분 자리에 모인 사람들과 나는 (책의) 전체적인 논조에 동의하지 않았다. 하지만 책의 탓으로, 분노의 힘을 빌려 톺아보며 이야기할 수 있었다. 나는 이 책을 보며 내가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말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그래서 나는 입을 열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말로서 표현하는 것에 재능이 없다고 생각해서, 나는 말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서, 검열을 하느라 지쳐서, 다른 누군가 해주겠지 라는 태도를 기저에 갖고 있었다. 하지만 <동물노동>의 언어를 보고 입 다물고 물불 가릴 때가 아니라는 급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이 책 저자들의 저명함과 영향력 등에서 오는 힘과 나의 힘에 대해 생각했다. 사람들과 모이고, 이야기해서 쓸 말을 만들어내고, 서로 간 여러 상상을 던지며, 시도해볼 만한 걸 건져내고, 세상에 사회 운동의 형태로 주장해보는 것이,내가 낼 수 있는 힘이지 싶다.
비인간동물의 노동이 필요해서 또 권력이 있는 인간만의 체계를 만들어가는 것 같았다. 당사자의 의사를 확인하는 과정이 어렵고, 어쩌면 평생토록 정확히 알 수 없는 일일 수 있다. 이 과정은 시간이 오래 들고, 인간의 쾌적한 생활을 꾸리는 데는 노동에 효율이 필요하다. 그리고 효율로서 기여하는 데 인간은 동물노동을 필요로 한다. 동물노동을 인간사회에 ‘끼워넣는다’ 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노동 환경의 개선, 학대의 위험, 상품화를 피하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의 습성에 맞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복원하지 않는다면 노동환경의 개선은 그저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기에 동물 복지적인 무언가를 해 준 것 아닐까. 일을 하려면 욕구를 참아야 하는 훈련이 있을 것이고, 이때 동물이 욕구를 참아가면서까지 인간이 필요로 하는 노동을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을 위해서이다. 동물을 위한 동물노동이 아닌, 인간을 위한 동물노동인 것이다. 동물노동이 시작되고 실현된 과정은 인간의 필요 의사이다. 자본주의 시장 속에서 인간이 원하는 노동을 해낼 능력을 가진 동물은 모두 상품화와 위계가 일어날 것이다. 인간 사회 역시 그렇기 때문이다.
동물복지, 동물노동의 한계는 인간이 ‘해주려고’ 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역량이 있는, 비장애인 중심으로 도시화된 사회 속에는 이러한 동물을 위한 개념은 책에서 주장하는 형태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금 우리의 시스템 속에서 한 집단의 추가해서 개념을 만들기 보다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스템의 개선이 우선이었다. 일을 해낼 역량이 있는 존재만 쓰이게 되는 것, 쓰임은 상품화를 할 수 있는 도구가 되고, 인간은 쓰임을 증명하기 위한 여러 자격들을 얻기 위해 자신을 갈고 닦는다. 하지만 자기 의지로 갈고 닦을 수 있는 사람도 있고, 의지를 조절할 수 없는 장애가 있는 사람도 있고, 주변환경이 따라주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 책에서도 노동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가졌다고 여기는 동물은 주로 가축이었던 동물로 정해둔 것 같았다. 가축화된 동물의 고용기회를 생각한다. 반려동물노동을 이야기하지만, 반려동물 산업과 사료시장은 가린다, 노동하는 동물과 사회에서 여기는 혐오동물, 야생동물 간에 생기는 위계는 어찌할 것인가?
인간의 사회 시스템과 노동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것을 <동물노동>속 주장을 보며 확신이 들었다. 답답함을 건드려주는, 책 앞에 함께 이야기하기로 모인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앞으로 세미나를 거치면서 동물을 위한 상상을 할 수 있길 바란다.
지지 (동물해방공동체 직접행동DxE 활동가)
읽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책의 결론까지 가지 않은 것 같지만, 대부분 자리에 모인 사람들과 나는 (책의) 전체적인 논조에 동의하지 않았다. 하지만 책의 탓으로, 분노의 힘을 빌려 톺아보며 이야기할 수 있었다. 나는 이 책을 보며 내가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말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그래서 나는 입을 열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말로서 표현하는 것에 재능이 없다고 생각해서, 나는 말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서, 검열을 하느라 지쳐서, 다른 누군가 해주겠지 라는 태도를 기저에 갖고 있었다. 하지만 <동물노동>의 언어를 보고 입 다물고 물불 가릴 때가 아니라는 급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이 책 저자들의 저명함과 영향력 등에서 오는 힘과 나의 힘에 대해 생각했다. 사람들과 모이고, 이야기해서 쓸 말을 만들어내고, 서로 간 여러 상상을 던지며, 시도해볼 만한 걸 건져내고, 세상에 사회 운동의 형태로 주장해보는 것이,내가 낼 수 있는 힘이지 싶다.
비인간동물의 노동이 필요해서 또 권력이 있는 인간만의 체계를 만들어가는 것 같았다. 당사자의 의사를 확인하는 과정이 어렵고, 어쩌면 평생토록 정확히 알 수 없는 일일 수 있다. 이 과정은 시간이 오래 들고, 인간의 쾌적한 생활을 꾸리는 데는 노동에 효율이 필요하다. 그리고 효율로서 기여하는 데 인간은 동물노동을 필요로 한다. 동물노동을 인간사회에 ‘끼워넣는다’ 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노동 환경의 개선, 학대의 위험, 상품화를 피하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의 습성에 맞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복원하지 않는다면 노동환경의 개선은 그저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기에 동물 복지적인 무언가를 해 준 것 아닐까. 일을 하려면 욕구를 참아야 하는 훈련이 있을 것이고, 이때 동물이 욕구를 참아가면서까지 인간이 필요로 하는 노동을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을 위해서이다. 동물을 위한 동물노동이 아닌, 인간을 위한 동물노동인 것이다. 동물노동이 시작되고 실현된 과정은 인간의 필요 의사이다. 자본주의 시장 속에서 인간이 원하는 노동을 해낼 능력을 가진 동물은 모두 상품화와 위계가 일어날 것이다. 인간 사회 역시 그렇기 때문이다.
동물복지, 동물노동의 한계는 인간이 ‘해주려고’ 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역량이 있는, 비장애인 중심으로 도시화된 사회 속에는 이러한 동물을 위한 개념은 책에서 주장하는 형태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금 우리의 시스템 속에서 한 집단의 추가해서 개념을 만들기 보다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스템의 개선이 우선이었다. 일을 해낼 역량이 있는 존재만 쓰이게 되는 것, 쓰임은 상품화를 할 수 있는 도구가 되고, 인간은 쓰임을 증명하기 위한 여러 자격들을 얻기 위해 자신을 갈고 닦는다. 하지만 자기 의지로 갈고 닦을 수 있는 사람도 있고, 의지를 조절할 수 없는 장애가 있는 사람도 있고, 주변환경이 따라주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 책에서도 노동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가졌다고 여기는 동물은 주로 가축이었던 동물로 정해둔 것 같았다. 가축화된 동물의 고용기회를 생각한다. 반려동물노동을 이야기하지만, 반려동물 산업과 사료시장은 가린다, 노동하는 동물과 사회에서 여기는 혐오동물, 야생동물 간에 생기는 위계는 어찌할 것인가?
인간의 사회 시스템과 노동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것을 <동물노동>속 주장을 보며 확신이 들었다. 답답함을 건드려주는, 책 앞에 함께 이야기하기로 모인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앞으로 세미나를 거치면서 동물을 위한 상상을 할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