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한
안녕하세요. 저는 빛고을 광주에서 인문학을 공부하고 있는 강한이라고 합니다. 방가워요~ㅎ ^.^ 개인적으로 이런 주제의 세미나는 처음인지라, 몇몇 낯선 용어들이 생소하고도 반가웠습니다. 저는 세미나의 후기를 언어의 범주화란 주제에 주목해서 작성하려고 합니다.
세미나는 언어, 즉 “관계를 새롭게 맺기 위한 언어의 발명”이라는 이끔이 아정 선생님의 설명으로 시작했습니다. 동물에 대한 편향을 내포한 언어가 일상에 교묘하게 침투해 있고, 동물에 대한 감각과 인식을 굴절시켜 관계를 왜곡시킨다는 것. 저에게는 이 말의 여운이 그날 이후 뇌리에 오래도록 남아 있습니다.
이끔이는 언어의 범주화에 내포된 인간과 동물의 위계가 현실 사회에서 동물에 대한 상품화(생명 파생상품)와 불가분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을 너무 잘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언어의 범주화를 통해 동물을 분류하는 추상화가 우리의 일상에서 동물에게 가해지는 범주적 폭력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이끔이는 세미나에서는 <사로잡는 얼굴들>이라는 책을 소개하면서 몇 장의 사진들을 공유해 주었습니다. 아마 이 순간이 저에게 가장 크게 다가왔던 순간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편향성을 지닌 언어의 범주가 추상화의 폭력을 발생시킨다면, 이는 비유적으로 말해 그 얼굴을 훼손시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따라서 언어가 은폐하는 베일을 거둬들인다는 것은 이끔이의 말처럼 수십 년간 퇴적된 감각을 바꾸는 것, 다시 말해, 세월의 흐름이 퇴적된 늙은 돼지의 얼굴과 그 피부주름에서 대체할 수 없는 구체적인 개별자의 얼굴을 마주 보는 것이라는 걸요.
이번 세미나를 통해서 동물에 대한 편향성을 내포한 언어의 범주화가 우리의 일상에서 인간의 동물지배를 가능하게 하는 주요한 계기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언어에 기초한 범주적 폭력이 매일의 일상과 문화의 형식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죠. 공장식 축산의 대규모 학살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평범한 일상과 사회적 공간에서 보이지 않는 작은 학살들이 언어의 범주로 끊임없이 발생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죠.
발제가 끝나고 난 후, 이어졌던 참여자들의 논의에서 저는 일상의 평화란 게 이러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로의 언어를 보완하고 이어가면서 말뭉치를 짜아가는 대화들이 저에게는 사회성과 호혜성 그리고 연대성의 계기들이 서로 얽혀 들어가 일상적 평화를 구축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면서 이러한 행위들의 누적이 갈등의 고조를 최소화하고 동물에 관한 그릇된 범주의 자명성에 균열을 낼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강 한
안녕하세요. 저는 빛고을 광주에서 인문학을 공부하고 있는 강한이라고 합니다. 방가워요~ㅎ ^.^ 개인적으로 이런 주제의 세미나는 처음인지라, 몇몇 낯선 용어들이 생소하고도 반가웠습니다. 저는 세미나의 후기를 언어의 범주화란 주제에 주목해서 작성하려고 합니다.
세미나는 언어, 즉 “관계를 새롭게 맺기 위한 언어의 발명”이라는 이끔이 아정 선생님의 설명으로 시작했습니다. 동물에 대한 편향을 내포한 언어가 일상에 교묘하게 침투해 있고, 동물에 대한 감각과 인식을 굴절시켜 관계를 왜곡시킨다는 것. 저에게는 이 말의 여운이 그날 이후 뇌리에 오래도록 남아 있습니다.
이끔이는 언어의 범주화에 내포된 인간과 동물의 위계가 현실 사회에서 동물에 대한 상품화(생명 파생상품)와 불가분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을 너무 잘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언어의 범주화를 통해 동물을 분류하는 추상화가 우리의 일상에서 동물에게 가해지는 범주적 폭력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이끔이는 세미나에서는 <사로잡는 얼굴들>이라는 책을 소개하면서 몇 장의 사진들을 공유해 주었습니다. 아마 이 순간이 저에게 가장 크게 다가왔던 순간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편향성을 지닌 언어의 범주가 추상화의 폭력을 발생시킨다면, 이는 비유적으로 말해 그 얼굴을 훼손시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따라서 언어가 은폐하는 베일을 거둬들인다는 것은 이끔이의 말처럼 수십 년간 퇴적된 감각을 바꾸는 것, 다시 말해, 세월의 흐름이 퇴적된 늙은 돼지의 얼굴과 그 피부주름에서 대체할 수 없는 구체적인 개별자의 얼굴을 마주 보는 것이라는 걸요.
이번 세미나를 통해서 동물에 대한 편향성을 내포한 언어의 범주화가 우리의 일상에서 인간의 동물지배를 가능하게 하는 주요한 계기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언어에 기초한 범주적 폭력이 매일의 일상과 문화의 형식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죠. 공장식 축산의 대규모 학살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평범한 일상과 사회적 공간에서 보이지 않는 작은 학살들이 언어의 범주로 끊임없이 발생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죠.
발제가 끝나고 난 후, 이어졌던 참여자들의 논의에서 저는 일상의 평화란 게 이러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로의 언어를 보완하고 이어가면서 말뭉치를 짜아가는 대화들이 저에게는 사회성과 호혜성 그리고 연대성의 계기들이 서로 얽혀 들어가 일상적 평화를 구축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면서 이러한 행위들의 누적이 갈등의 고조를 최소화하고 동물에 관한 그릇된 범주의 자명성에 균열을 낼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