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논평][탐방기] 냉전의 인질로 붙들린 사람들의 이야기1

FIPS 심아정


 ‘시베리아 ’와 조우하다

1945년 8월 15일. 이 날이 모든 조선인들에게 한결같은 해방을 가져다 준 것은 아니었다. 전쟁 말기에 일본군으로 징집된 식민지 조선의 청년들 중에는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소련군에 의해 시베리아로 끌려 가 혹독한 포로생활을 몇 년씩이나 견뎌야 했던 이들이 있었다. 스무 살 동갑내기였던 그들 중 살아남아 귀환한 자들은 어느덧 90세를 훌쩍 넘은 할아버지가 되었다. 포로 경험자들과 유족들의 인터뷰 작업은 40년 이상 침묵을 강요당해 왔던 그들의 억압된 시간들을 봉인 해제하는 것이기도 하다.

시베리아 조선인 일본군 포로 문순남의 유족 문용식을 처음 만난 건 2015년 여름, MBC 8.15 특집 다큐멘터리 <아버지와 나-1945년 시베리아>의 제작과정에 통역으로 참여하게 되면서 부터였다. 1960년생인 그는 대구의 한 공장에서 수출용 대형 기계를 포장하는 일을 한다. 야간업무가 많고 휴일이 불규칙하며 주로 야외에서 해야 하는 강도 높은 육체노동이다.

일본의 역사학자 오구마 에이지와 문용식의 아버지는 둘 다 시베리아에서 일본군 포로로 지낸 경험을 공유한다. 오구마 에이지는 자신의 아버지 겐지를 인터뷰한 내용에 역사적 사료에 근거한 설명을 덧붙여 전후 일본 사회를 함께 조망하는 『일본 양심의 탄생』[2]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동시대의 경제, 법제, 정책 등을 주시하면서 당시의 계층 이동, 산업 구조 등의 상황을 아버지의 경험의 궤적을 따라 담담한 논조로 묘사하는 작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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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8월15일 방영된 MBC다큐, 아버지와 나-1945년 시베리아(오구마 겐지와 오구마 에이지)>


다큐멘터리의 제작 취지는 오구마 에이지가 아버지의 증언을 기록하고 분석하는 과정을 통해서 청년 시절의 아버지가 겪어낸 시공간과 다시 마주하게 되고, 아버지가 일본 정부로부터 받은 위로금의 절반을 같은 수용소의 조선인 포로 오웅근에게 보냈다는 사실과, 그 후 오웅근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에 아버지가 공동 원고가 되었다는 이야기 등을 통해서 일본군 내의 조선인 포로들의 존재를 조명하고, 일본 천황의 전쟁책임, 강제노역에 대한 소련의 책임, 그리고 전후에 시베리아 포로들의 존재를 알고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한국정부의 외교적 태만을 고발하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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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수유너머104   http://www.nomadist.org/s104/G3_Webzine_review_phil/29645

『문학3 (제2호)』(창비,2017)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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