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두천 프롤로그, 산책자 스케치 / 구지연

2021-11-05



‘동두천‘이라고 하는 곳


동두천은 저에게 익숙한 곳은 아닙니다. 경기 외곽 중에서도 상당한 외곽의 지역, 보다 익숙한 이름의 의정부와 가까이 있는 동네 정도로 인식해왔고 지난 6월 탐조를 목표로 동두천을 찾아갔을 때에는 '처음 와보는 동네'에 대한 설렘을 가지고 있기도 했습니다. 이전에 이미 동두천을 방문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된 것은 캠프 호비의 철조망 쳐진 담벼락을 따라 숲으로 가던 길에서 묘지 하나를 발견했을 때였습니다. 기지촌 주변으로 60~70년대에 생겨난 무연고 무덤이 많다는 것, 그런 무덤 중에는 당시 성노동을 하던 여성들의 무덤도 있다는 것, 우리 일행이 마주친 묘지는 그 중 한 명인 '순자'의 것인데 이 분의 사연이 애절한 러브스토리로 주목받으면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는 등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기지촌 여성들의 이야기나 현장을 접해본 적이 있다는 사실과 함께 내가 동두천을 방문한 것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 기억과 기록을 더듬어보니 19년 10월 일종의 대안적, 예술적 안보관광 프로그램에 참여했을 때 기착지로 동두천의 낙검자수용소와 상패동 공동묘지를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비록 많이 흐릿해진 기억이긴 하지만 이 경험이 올해 동두천에서 '전형성에 갇히지 않는' 삶들을 보고 말하고자 했을 때 전형적이다, 새롭다, 하고 평가할 만한 기존의 정보나 인상, 이야기의 소재가 없는 상태의 저에게는 전형성이라 하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어렴풋이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동두천이라는 지역이나 지명과 관련해 떠오르는 이미지, 사건, 사실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저는 동두천을 총 여섯 번, 조금씩은 다른 목적을 가지고 먼저 방문해본 사람으로서 그동안 보고 듣고 경험한 것 그대로를 공유하려고 합니다. 익숙하면 익숙한 대로, 낯설다면 낯선 대로, 함께 산책을 하듯 풍경을 읽어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중간중간 설명을 덧붙이기도 하겠습니다. 



기지촌


 

 

2년 전 방문한 성병관리소는 스산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분위기가 감도는 곳이었습니다. 관리소라기에는 수용소에 가까운, 실제로 낙검자수용소 혹은 몽키하우스라는 잔인한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던 곳입니다. 1969년 미국의 닐슨 대통령이 아시아 지역에 주둔하는 미군 규모를 축소하겠다고 하는 닐슨 독트린을 발표하면서 기지 축소/철수를 염려한 정부가 기지촌 '관리'에 나서며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한 것이 1971년입니다. 기지촌 대책사업을 위한 기본계획의 내용은 크게 환경정화, 범죄예방, 주민선도 등으로 구성되었습니다. 환경정화 계획 안에서 공중위생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성매매 여성에 대한 성병검진과 관리가 이루어졌는데, 진료소에서 검진이 이루어진 결과 보균자로 확인된 사람들을 격리수용해서 치료하는 곳이 바로 관리소였습니다. 진료소가 비교적 도심에 위치한 반면 관리소는 소요산 초입에 위치했고 현재는 폐허로 방치돼있습니다. 당시 수용 여성들이 탈출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창문에 쳐놓은 철조망이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상패동 공동묘지는 모르는 상태로 본다면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동네의 야산처럼 생겼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공동묘지로 쓰이고 있고, 여기에는 연고가 없어서 비석이라든지 주인의 이름이 남지 않은 무덤, 오랫동안 관리되지 않은 것 같은 무덤, 봉분이 비에 쓸려간 탓인지 무덤 자리가 맞나 알 수 없는 무덤이 아주 많습니다. 2년 전 이곳에 왔을 때 주최 측에서 사람들에게 하얀 국화를 나누어주고 무덤 어디에든지 놓고 묵념을 한다거나 여기 묻힌 이가 어떤 사람이었을까 상상해보는 시간을 가졌던 기억이 납니다.


이 두 곳을 방문하는 것 외에는 연천 군부대 정문 바로 앞에 위치한 음식점에서 비빔국수를 먹고, 연천 유엔군 화장터와 철원 삼부연 폭포 등에 방문해 둘러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당시 관광의 코스였습니다. '안보'라고 하면 국방, 그리고 군대, 군대 중에서 미군, 미군 하면 미군 상대로 성매매했던 여성, 이렇게 줄줄이 사탕처럼 연결되는 이야기, 얼마나 자연스럽게 느껴지시나요? 꼭 안보를 주제로 하지 않더라도 동두천 혹은 기지촌을 둘러본다고 할 때 이 두 곳이 포함되지 않는 경우는 드문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접근방식에 있어서는 조금 대안적이라 할 수 있는, 일방적인 안내자의 설명을 가지고서만 이 공간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방식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이 두 공간이 지역을 보여줄 수 있는 장소로, '안보' 이야기의 소재로 선택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새와 드론


 


그리고 2년이 흘러 동두천을 다시 방문한 것은 탐조를 위해서였습니다. '동두천이 새를 관찰하기에 좋은 곳인가보다' 생각하며 동두천중앙역에 도착했습니다. 제가 사는 성남시에서 지하철을 타고 2시간 30분 정도 걸려 갔고 나중에 보니 어디에 살든 동두천에 도착하기까지는 2시간 가량의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았습니다. 역 바깥으로 나온 순간부터 어떤 새든 발견하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귀를 쫑긋 세웠습니다. 


 


사람이 다니는 거리보다 새가 더 많을 숲을 향해 걸어가는 길 오른쪽으로 캠프 호비라고 하는 미군기지가 보입니다. 숲길을 조금만 높이 올라가도 담장 너머 풍경이 훤히 보이는데 이날이 특별한 훈련일이었는지 평소의 모습인지 알 수 없지만 탱크가 빽빽이 서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담벼락 곳곳에는 사진촬영을 금지한다는 표지가 붙어있는데 다섯 명 정도 되는 무리가 높은 지대에서 기지를 향해 서있는 모습, 게다가 휴대폰 카메라와 망원경 등을 가져다 대고 있는 모습이 기지 안에서 포착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하지 않나, 지나치게 수상하게 보이는 경우 이쪽을 향해 경고 없이 총을 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에 심장이 조금 빨리 뛰었습니다. 



기대한 것보다 울창하고 밝은 초록으로 가득했던 산 속에서는 예상대로 수많은 새 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만, 소리를 내는 존재의 모습을 포착하기는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최대한 정밀하게 샅샅이 훑는 모드로 눈에 힘을 주어도 빽빽한 나뭇잎들 사이에서 새의 윤곽을 구분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어서 소리가 나는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무진 애를 썼습니다. 



목이 아프도록 하늘을 보며 걷는데 기계음 같은 것이 들리기 시작하더니 드론이 한 대 날아갑니다. 프로펠러가 두 개 달린 수송용 헬기의 축소판 같은 생김새며, 짙은 풀색을 한 것이 한눈에도 군에서 띄운 드론임을 알 수 있습니다. 범상치 않은 모양이나 위잉거리는 소음, 일반적으로 하늘을 나는 물체치고는 상당히 저공비행하는 스타일 같은 것들이 저는 신경 쓰이기도 하고 군용 드론이라면 어떤 종류의 임무를 수행하는 걸까, 이렇게 일상적으로 기지 주변을 돌아다니는 것일까 궁금하기도 했는데 일행 중 동두천에 오래 살아오신 분은 헬기 소리를 많이 듣고 자란 세대라 이런 소음이나 존재가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동두천


   


동두천에서는 기지촌으로서 동네의 정체성을 상기하게 하는 골목이나 가게들을 자주 마주치게 됩니다. 기지촌임을 알기에 그런 특성을 갖는 시설물들을 놓치지 않고 더 또렷하게 인식하면서 '역시..' 하게 되는지도 모릅니다. 놀라우리만치 과감하게도 '양키시장'이라 이름 붙여진 시장/거리에는 중고, 새것 할 것 없이 기지에서 흘러나온 다양한 물건을 취급하는 잡화점이 여럿 운영 중이었습니다. 비 오는 평일 낮, 상점의 절반쯤은 문을 닫은 오래된 번화가를 상상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군 배급용인 듯한 빛바랜 올리브색 속옷에서부터 반들반들한 항공점퍼, 줄이 잔뜩 달린 카모플라쥬 무늬 백팩, 군화, 군용 식량, 부대에서 이런 것을 반출해도 되는가 싶은 눈삽과 낙엽갈퀴, 탄환보관용처럼 보이는 상자까지 그야말로 온갖 물건들이 진열된 가게에는 한국인으로 보이는 손님들이 간혹 드나들었습니다. 
  


동두천 주민들 사이에서 '구시가지'라 불리는 보산역 인근을 어슬렁거리다 보면 다소 한산한 거리에서 양키 시장과 마찬가지로 셔터를 내린 많은 가게와 보다 다채로운 상점, 음식점을 볼 수 있습니다. 역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캠프 케이시 정문을 향해 난 도로 양쪽에는 맘스터치와 서브웨이로 시작해 케밥집, 인도음식점, 타투숍, 전자담배 판매점이 보이고, 도로의 왼편 뒤쪽으로는 '보산관광특구'라 이름 붙여진, 번성했던 과거가 그려지는 클럽과 음식점, 기념품점 밀집구역이 있습니다. 평일 낮이면 관광특구와 도로 양쪽의 상점들이 조용히 문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조용하게 각양각색인 상점들 중에서 기념액자를 제작하는 세일사와 탱크용 군화를 판매하는 이태리양화점, 담요나 점퍼를 취급하는 의류잡화점에 방문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세 가게의 공통점은 모두 고객의 디테일한 주문을 바탕으로 물건을 제작한다는 것입니다. 세일사의 경우는 미군이 한국을 떠나면서 이곳에서의 시간이나 추억을 담아갈 수 있도록 액자 형태로 만드는 곳입니다. 탱크라든지 총칼, 해골, 불꽃 등 부대와 관련한 다양한 상징이나 로고, '훌륭히 복무했다', '행운을 빈다' 등의 동료 부대원들이 보내는 메시지 같은 것들이 조화롭게 배치된 유리액자들이, 아마도 미세하게 잘못 만들어져 판매되지 못했거나 사장님이 견본 삼아 만드셨거나 그도 아니면 주문한 후에 누군가 찾아가지 못한 액자들이 벽에 가득 걸려 있습니다. 




거리에는 여느 동네가 그렇듯 다양한 사람들도 보입니다. 작은 음식점의 창가 자리에서 혼자 밥을 먹는 사람,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 골목에 서서 한참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중고 가구가게에서 의자와 테이블을 골라 트럭에 싣는 사람, 아파트 단지 안에서 산책하는 여자와 아이들, 백팩을 메고 양손 가득 뭔가를 들고 수퍼마켓에서 나가는 남자, 자전거를 타고 휭 지나가는 사람, 군복을 입고 햄버거 가게에서 단체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는 두 사람, 일요일 저녁 지하철역에서 쏟아져나와 부대 쪽으로 걷는 사람들, 편의점 앞 데크에 앉아서 담배를 피는 사람들, 교복 차림에 양키시장에서 본 것과 비슷한 백팩을 멘 사람, 가게를 지키다 바람 쐬러 나온 듯 뒷짐을 진 사람. 



가장 최근에 동두천을 떠나오면서 마지막으로 머무른 곳은 '동두천 쇼핑'이라 쓰인 간판이 빛나던 저녁 8시 즈음의 어두운 보산역 앞 거리였습니다. 20~25분마다 한 번씩 지하철이 도착하면 열댓 명 정도씩 되는 사람들이 한 출구에서 나와 서로 다른 방향으로, 골목골목으로 흩어졌습니다. 이들이 꾸리고 있는 삶은 어떤 모습일까, '기지촌' 동두천에서 기지가 떠나는 자리에 어떤 것들이 자리잡게 될까 궁금했습니다. 새로이 생겨나고 머물고 자리잡을 어떤 삶이든 누구도 쉽게 짐작하기 어려운 모습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