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한 국민의 의무와 국방 엔터테인먼트 / 허윤

2021-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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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10월이 되면 육군본부는 계룡대 비상활주로에서 ‘지상군 페스티벌’을 개최한다. 장비탑승, 병영훈련 체험에서부터 군 복무 중인 아이돌, 가수 등이 공연을 하고 배우들이 사회를 보는 축제다. 2019년에는 아이돌 그룹 비투비가 무대에 올랐고, 2018년에는 빅뱅의 태양과 대성이 히트곡을 불렀다. 군 복무 중인 멤버를 응원하기 위해 그룹의 다른 멤버들이 게스트로 참여하여 무대에 오르기도 한다. 팬들은 ‘군백기(군 복무로 인해 활동하지 못하는 기간)’ 동안 아이돌을 보기 위해 전국 각지의 공연장을 찾는다. 비활동기가 긴 그룹의 경우, 군대에 있는 동안 더 쉽게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다. 한국 최대 연예기획사가 국방부라는 말이 그저 농담만은 아닌 것이다.

 

      과거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젊은 여성 연예인이 군대를 위문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한국전쟁 시에는 마릴린 먼로가 미군을 방문하였고, 군 위문 프로그램이었던 <우정의 무대>의 2부에는 스트립쇼에 가까운 행사가 진행되었다고 한다. 즉 남성 군인들에게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위안과 위로의 대상으로 제공한 것이다. 현재도 ‘군통령’이 되는 것이 걸그룹의 성공 경로이고, 군부대 행사에서는 선정적이고 섹시한 의상과 춤을 선보인다. 이러한 위문산업이 군대를 향해 발신된 것이라면, ‘국방 엔터테인먼트’는 군대로부터 발신된 것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현상이다. 2000년대 이후 국방홍보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엔터테인먼트에는 SM, JYP, YG 등 국내 최고의 연예기획사에 소속된 연예인들이 동원된다. 홍보공연뿐 아니라 극 뮤지컬, 사진집, 도슨트 등 국방부의 다양한 행사의 전면에 연예인들이 나서는 것이다.



 

뮤지컬 <신흥무관학교>의 포스터들


국군의 날을 전후로 하여 제작되는 뮤지컬에는 군복무 중인 연예인들이 다수 등장한다. 2018년 지창욱, 강하늘, 성규(인피니트), 온유(샤이니) 등이 참여한 <신흥무관학교>는 국방부 제작 뮤지컬 중 이례적으로 대규모 관객 동원에 성공하였고, 전국투어도 진행하였다. 평상시라면 한 공연에 모으는 것이 불가능한 배우와 가수들이 ‘군 소속’으로 한 공연에 오르기 때문에 팬들 사이에서는 예매 전쟁이 벌어지곤 한다. 한국전쟁 유해발굴단의 이야기를 다룬 <귀환>(2019~2020)은 군복무 중인 엑소 멤버들이 다수 참여하였으며, 1차 예매가 시작되자마자 매진행렬을 기록하였고, 티켓 대행사기에 주의하라는 문구가 붙을 만큼 인기작이었다. 2020년에는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로 공연을 판매하기도 하였다. 온라인 공연 중 팬들은 댓글창에 자신이 좋아하는 출연자의 이름을 연호하거나 응원 문구를 남겼다. 일본,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팬들이 다수 참여한 것은 물론이다. 군복을 입은 한류 스타의 사진집이 해외에서 인기리에 판매될 때, 국방과 안보의 문제는 어떻게 논의할 수 있을까?



뮤지컬 <귀환>의 한 장면

 


국민개병제가 실시된 1949년 이래, 모든 남성이 군대에 간다는 의무병 제도는 한국 사회의 정상성을 직조하는 중요한 틀이 되었다. 군대는 정상성의 기준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국방의 의무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었다. 1950년대 많은 남성들은 제대증을 위조하거나 호적을 바꿔치기하는 방식으로 병역을 기피했다. 3차대전이 곧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말이 오가는 상황에서, 군대에 간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했고, 돈이나 연줄이 없는 자만 군대에 간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오히려 병역법은 남성 청년 일반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었다. 길을 걷는 남성 청년은 누구든 병역을 기피하고 있다는 의심을 살 수 있었고 불심검문의 대상이 되었다. 고향을 떠나 도시에 와서 다른 이름, 다른 성별로 살아가던 퀴어들을 단속하는 데도, 병역법이 사용되었다. 이처럼 병역법이 국민 일반을 구속하는 데 사용된 것은 병역법이 토대로 하는 안보가 외부가 아닌 내부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개발기에는 ‘경제 안보’라는 말이 흔히 사용되었다. 노동자들이 저임금으로 일해서 더 많은 이윤을 내는 것도, 중동에 가서 건설업에 종사하는 것도 국가의 안보를 위한 일로 칭송되었다. 북한보다 잘사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곧 국가를 안전하게 만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러한 생각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경제적, 문화적으로 한국의 이름을 알린 사람들이 국가의 안보를 일부 담당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국제대회에서 수상한 운동선수나 예술가 등은 군을 면제받을 수 있고, BTS와 같은 케이팝 스타에게는 군 면제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등장하는 것 등은 군대가 안전보장의 문제만이 아니라 국민이 국가를 ‘위해서’ 어떤 공헌을 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 전위된다. 군 소속의 케이팝 아이돌을 동원해서 케이팝 군가를 만들고, 큰 제작사와 함께 국방 홍보용 뮤지컬을 제작하는 등 국방 엔터테인먼트는 ‘신성한 국민의 의무’를 활용하여 한국 군대의 힘을 홍보한다. 즉 국방 엔터테인먼트는 군대가 국민을 동원하고 활용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최전선에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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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 (FIPS 연구위원)

부경대학교 국문과 조교수. 남성성을 중심으로 젠더 문학/문화사를 공부하고 있다. 『1950년대 한국소설의 남성 젠더 수행성 연구』(역락, 2018) 등의 저서,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민음사, 2018), 『을들의 당나귀 귀』(후마니타스, 2019), 『원본 없는 판타지』(후마니타스, 2020) 등의 공저, 『일탈』(공역, 2015), 『모니크 위티그의 스트레이트 마인드』(2020) 등의 역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