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눈으로 본 3.11 후쿠시마 핵재난 10주년 / 이윤숙

2021-08-22


* 이 글은 2021년 3월에 쓰였습니다. 


후쿠시마 부흥이라는 환상

아직도 엄중한 코로나 상황에서도 올림픽 개최라는 부푼 꿈을 버리지 못한 일본 정부가 기어코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기로 결정했다. 그것이 어떤 파국적 결과를 가져올지 경고하는 목소리를 무시한 채 오로지 자신들에게 간편하고 돈도 덜 드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방사능으로 오염된 흙과 쓰레기들을 제염 푸대에 넣어 이동시킨 뒤 이제 후쿠시마는 “안전하다” 외치는 것처럼, 오염수를 바다에 내다버림으로써 후쿠시마 핵사고는 올림픽을 위한 ‘부흥의 슬로건’ 속에 잊혀지기를 강요당하고 있다.

후쿠시마 핵사고가 일어난 지 어느새 10주년이다. 일본정부가 후쿠시마를 ‘여전히 진행되는 핵재난’의 장소가 아니라, 재난을 딛고 일어선 ‘부흥’의 장소로 아무리 선전하고 미화한다 하더라도, 그곳에 사는 모든 생명들이 여전히 계속되는 ‘피폭 후의 세계’ 를 아프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결코 감추고 지울 수 없다. 피해자들을 보이지 않게 만들고,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침묵시킴으로써 핵재난을 망각하게 한다. 올림픽 강행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를 무시하고 후쿠시마에서 성화를 봉송함으로써 부흥이란 희망을 불러일으키려 하지만, 재난 이후를 살아가는 후쿠시마 사람들은 그러한 국가의 프로젝트가 결코 실현될 수 없는 환상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온몸으로 저항한다.

 

핵재난 이후 여성들의 삶

재난은 모든 이에게 평등하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들과 어린이, 노약자들은 재난 이후 더욱 고통스러운 상황으로 내몰린다. 젠더를 기준으로 보면 여성들이 남성에 비해 재난 피해에 취약하고, 그들의 목소리와 요구들은 존중받지 못한다. 얼마 전 NHK에서 후쿠시마 재난 대피소에서 벌어진 빈번하고 지속적인 성폭력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방영되어 충격을 준 일이 있었다. 모든 성폭력 피해가 그렇듯 여성들은 침묵을 깨기 위해 고군분투를 해야만 한다.

한 사회의 젠더 불평등은 재난 이후 심화된 형태로 나타난다. 피폭 이후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후쿠시마 여성들은 자신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불안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싶어도 그것이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에 더욱 절망한다.


영화 <희망의 나라>의 한 장면


일상적으로 돌봄 노동을 수행하고 있는 많은 여성들은 아이들을 비롯해 자신의 가족들이 먹는 음식들에 의해 내부피폭을 당하는 현실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하루가 다르게 체력이 떨어지고 빈번히 코피를 쏟는 광경을 보면 불안과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자신들의 그런 의심과 불안을 입밖으로 내기란 너무나 어렵다. ‘안전하다’고 말하는 정부의 말을 믿지 않고 ‘풍문’을 만들어내는 여자, 심지어 ‘비(非) 국민이라고 낙인찍히기 쉽기 때문이다. 소노 시온 감독의 영화 <희망의 나라>에서는 근접지역으로 피난한 임산부가 피폭을 우려해 집 안에서도 거리에서도 방진복을 입고 다니는 장면이 나온다. 이것에 대해 사람들은 이 여성이 필요 이상으로 ‘엄살을 떠는’ 것으로 비난한다. 특히 마을의 리더격인 중년 남성들은 그런 행위를 남성들이 통치하는 세계에 대한 ‘모욕’으로 여긴다.

정부나 자치제의 ‘안전하다’는 말을 믿지 않고 스스로 피난을 떠난 ‘자주(自主) 피난’ 여성들에 대한 비난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피난마마’라는 조롱 속에서 피난지에서 새 삶을 살아가기 위한 지원을 받기보다는 ‘자기 책임’의 프레임 속에서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재난으로부터 삶을 복구하는 것이란?

하지만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세계에서도 여성들의 고민은 공명이 되어 마침내 모이게 된다. 피폭에 대한 일상적 불안과 비난에 고립감을 느끼던 여성들이 조금씩 목소리를 내자 거기에 공감한 수많은 여성들이 “나도 그렇다”는 소리로 화답을 하는 것이다. 이런 여성들, 그리고 이 여성들의 목소리에 동의하는 수많은 모여 전국 각지에서 ‘아이들을 방사능으로부터 지키는 모임’을 만들었고, 또 그많은 모임을 연결한 ‘아이들을 방사능으로부터 지키는 모임 전국네트워크’ 또한 만들어졌다. 이 네트워크를 통해 많은 여성들, 부모들이 피폭으로부터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서명을 받아 진정서를 만들고, 정부, 지자체, 학교 등과 협상을 하기도 하고, 어린이 건강피해 조사, 안전 급식, 어린이를 잠시 안전한 곳에서 생활하도록 하는 어린이 보양(保養) 요구, 어린이 피폭 재판 등의 활발한 활동들을 계속해 오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동안 고립과 불안의 세계에 있던 여성들이 인터넷 등을 통해 발화하기 시작했고 그 발화된 목소리들이 모여 ‘엄마들의 혁명’이라는 뜻의 잡지 <마마레보>가 만들어졌다. 이 잡지는 번역, 글쓰기, 디자인 등의 다양한 여성들의 재능을 기반으로 해서 피난자 상황과 피폭 건강조사, 핵발전소 사고 및 후속 조치에 책임을 묻는 재판, 국가 대응 문제 등에 대한 생생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다루어 왔고, 지금은 관련 단행본 출판 활동을 하고 있다. 

<마마레보> 편집장 와다 히데코 ⓒ 오치아이 유리코 (<일다>에서 재인용)

<일다> 관련 기사로 가기


그 밖에도 여러가지 형태로 여성들, 시민들의 저항은 계속되고 있다. 이들은 방사능 피해를 가시화하면서 고립과 분열에서 연대와 공투를 모색한다. 날마다 공기중의 방사능을 체크하는 모니터링 포스트를 철거하는 지자체의 방침에 저항하여 철거를 저지하는 데 성공한 후쿠시마 시민들, 빈번히 패소하면서도 피폭 책임을 묻는 국가소송을 계속하는 사람들….

여성의원 비율, 성별격차 지수가 최하위 수준이며 더구나 후쿠시마현 시정촌 수장 전원 남성이고 지방의회 의원 및 공무원의 관리직, 지역자치회장 등의 여성 비율이 매우 낮은 상황에서도 방사능에 민감하고 재난의 일상에서 삶을 일으키는 여성들의 싸움은 ‘부흥의 환상’을 깨뜨리면서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재난 이후 삶을 다시 살아낸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재난을 특정집단의 이익을 가져다주는 기회로 삼는 ‘재난자본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를 것이다. 재난으로부터 삶을 복구하고 재난을 막을 힘은 무엇으로 오는가? 그것은 피폭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일본 여성들의 싸움에서도 보듯이,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행해온 생명 돌봄의 다양한 경험 속에서 고투하며 획득한 감각과 사유에서 찾아질 수 있을 것이다. 재난의 본질을 제대로 규명하고, 그 책임자들과 싸우며, 재난을 막고 생명과 돌봄의 가치가 중시되는 정치시스템과 사회문화, 사유들을 새롭게 만들어감으로써 가능하게 될 것이다.

후쿠시마 핵재난 10년은 기후위기와 팬데믹 상황을 ‘개발’과 ‘새로운 성장기회’로 삼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너무나 엄중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후쿠시마 재난에서 무엇을 배우고 또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이윤숙 (FIPS 연구위원)

시민운동단체에서 탈핵, 기후위기 관련 운동을 하면서 정규박사학위 과정을 밟고 있다. 오랫동안 자연생태계에 대한 억압과 여성 억압의 문제에 대해 고민해 오고 있다. 여성의 몸이 이 세계에 어떻게 위치하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고, 탈상품화된 존재로 살며 자급하는 삶을 모색하고 있다. 공저 <꿈꾸는 지렁이-젊은 에코페미니스트들의 세상보기>, <덜 소비하고 더 존재하라>, 공역으로 <자급의 삶은 가능한가>, <자연의 죽음)>, <정치생태학> 등이 있다.